여름 첫 자두는 항상 너무 셔서 눈을 감게 된다

 마트 과일 코너에 자두가 나오면 여름이 시작된 거다. 귤을 보면 겨울이 온 걸 알듯이, 자두를 보면 여름이 온 걸 안다. 아직 에어컨을 안 틀었어도, 반팔을 안 꺼냈어도, 자두가 진열대에 올라오면 그게 신호다. 올해도 그랬다. 5월 말쯤이었나. 과일 코너를 지나가는데 짙은 빨간색 알맹이들이 투명 팩에 담겨 있었다. 표면에 하얀 가루 같은 게 살짝 묻어 있는, 그 자두.

구겨진 갈색 종이봉투 위에 놓인 윤기 나는 짙은 빨간색 자두 세 알

한 팩을 집었다. 4900원이었다. 여덟 알 정도 들어있었다. 첫 자두는 비싸다. 한여름이 되면 가격이 내려가는데, 시즌 초반에는 좀 센 편이다. 그걸 알면서도 샀다. 매년 그렇다. 첫 자두를 보면 그냥 사게 된다.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. 여름이 왔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건지, 아니면 그냥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운 건지.

집에 와서 씻었다. 자두는 씻기가 편하다. 물에 넣고 몇 번 굴리면 된다.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고 잘라야 할 것도 없다. 씻어서 바로 베어 물면 된다. 자취하는 사람한테는 이런 과일이 고맙다. 준비 과정이 거의 없으니까.

첫 번째 알을 베어 물었다. 이빨이 껍질을 뚫고 들어가는 그 느낌. 탱탱한 표면이 갈라지면서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. 거기까지는 좋았다. 그 다음에 신맛이 왔다. 입 안 전체로 퍼지는 시큼함. 눈을 감았다. 반사적으로. 뺨 안쪽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. 침이 확 돌면서 턱 아래가 찡했다.

셨다. 올해 첫 자두도 셨다.

한 입 베어 문 자두의 노란 속살이 드러나 있는 모습이 작은 흰 접시 위에 놓여 있다

자두가 시즌 초반에 신 건 이유가 있다고 한다. 아직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. 유통 과정에서 후숙이 좀 되긴 하지만, 나무에서 완전히 익은 것보다는 당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. 그러니까 제철 한가운데인 7월쯤 자두가 가장 달다는 뜻이다. 알고 있다. 매년 겪는 건데 알고 있다. 근데 매년 5월 말에 또 산다. 시다는 걸 알면서.

두 번째 알을 먹었다. 역시 셨다. 근데 첫 번째보다는 좀 나았다. 입이 적응한 건지, 아니면 이 알이 좀 더 익은 건지. 자두는 같은 팩 안에서도 개체 차이가 크다. 어떤 알은 단맛이 있고 어떤 알은 시기만 하다. 그래서 한 알 먹고 판단하면 안 된다. 여러 알 먹어봐야 그 팩의 전체적인 맛을 알 수 있다. 이것도 매년 자두를 사면서 배운 거다.

세 번째 알은 달았다. 드디어. 신맛이 먼저 오긴 했는데 그 뒤에 단맛이 따라왔다. 자두의 단맛은 다른 과일과 좀 다르다. 사과나 배처럼 깔끔한 단맛이 아니라, 좀 묵직하고 진한 단맛이다. 신맛이랑 겹쳐서 오니까 복잡한 맛이 된다. 그게 자두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. 단순하지 않은 과일. 첫 입에 바로 맛있지 않은 과일. 좀 노력이 필요한 과일.

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서 자두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. 외할머니가 봉지에서 자두를 꺼내 물에 씻어주셨는데, 내가 한 입 먹고 시다고 뱉었다. 외할머니가 웃으셨다. 그거 좀 있다가 먹어, 하루 이틀 두면 단맛이 나, 라고 하셨다. 나는 못 참고 또 한 알을 먹었다. 또 셨다. 또 뱉었다. 외할머니가 또 웃으셨다.

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는 자두가 며칠 지나야 달아지는 걸 알고 계셨던 거다. 경험으로 체득한 지식이다.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수십 년 여름을 보내면서 몸으로 알게 된 것. 나는 그걸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다. 자두 후숙 방법, 자두 보관법. 검색하면 다 나온다. 근데 외할머니는 검색 없이 아셨다. 그 차이가 좀 크게 느껴진다.

자두를 상온에 하루 이틀 두면 확실히 달아진다. 냉장고에 넣으면 후숙이 느려지니까 바로 안 먹을 거면 실온에 두는 게 낫다. 근데 나는 사오면 습관적으로 냉장고에 넣어버린다. 그래서 며칠이 지나도 시다. 그러다가 잊어버리고, 일주일 뒤에 꺼내면 물러져 있다. 시에서 바로 물러짐으로 넘어가버린 거다. 단맛을 느낄 타이밍을 매번 놓친다.

올해는 좀 달라지려고 했다. 팩을 사와서 반은 냉장고에 넣고 반은 부엌 한쪽에 그냥 뒀다. 이틀 뒤에 밖에 둔 걸 먹었는데, 확실히 달았다. 외할머니 말이 맞았다. 하루 이틀이면 달아진다. 표면을 눌러보면 살짝 들어가는 정도가 딱 좋다. 너무 단단하면 아직 시고, 너무 물렁하면 이미 지난 거다. 그 중간을 잡는 게 포인트다.

자두 셔서 눈 감는 그 순간이 사실 싫지는 않다.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진짜 그렇다. 시다는 건 살아있다는 느낌이다. 입 안이 확 깨어나는 느낌. 겨울 내내 귤이랑 사과만 먹다가 여름 첫 자두를 베어 물면, 아 계절이 바뀌었구나 하는 걸 혀로 느낀다. 그 신맛이 여름의 첫 인사 같은 거다.

올해도 첫 자두는 셨다.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.

그래도 또 살 거다. 5월 말에 마트에 자두가 올라오면 또 한 팩 집을 거다.

시다는 걸 알면서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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